2009/11/22 23:07

사고

etc 2009/11/22 23:07

이 일은 누구에게도 나누지 않은 이야기이다.


좀 부끄러운 이야기라서도 그렇고

다행히 대단한 이야기가 아니라서도 그렇다.

몇해전 문화교류활동으로 라오스에 갔을 때였다.

우기가 아니라서 소나기가 자주 내렸다.

우기에는 아마 하루종일 비가 내리나보다.

소나기는 삼십분 정도 사정없이 물을 부어대다

일 다 봤다는 듯한 표정으로 해를 내보이곤 했다.


그 날도 어김없이 소나기가 쏟아졌다.

나는 당시 음향장비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약 8kg정도, 제법 무게가 나가는 베링거 스피커가 비에 맞지 않도록

유쓰센터 도서관으로 스피커를 옮기고있었다.


말이 도서관이지 넉넉잡아 5평 될까말까한 작은 흙집이었다.

그곳은 한국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보내온 책들이

동그란 흙벽을 따라 책장에 꽂혀있었고

십여 명의 꼬마 여자아이들이

읽지도 못하는 영어그림책을 두어 명씩 모여앉아 그림만 보거나

영어설명서를 못 읽어 자기들 나름의 룰로 진행되는 보드게임을

꺅꺅 소리를 질러가면 하고 있었다.


나는 제법 무거운 스피커 하나를 끌어안고

도서관 문 앞에 도착했는데 한 여자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 아이는 작은 그림책을 무릎위에 펼쳐놓고 있었다.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내 발은 슬리퍼에서 미끄러져졌고

나는 중심을 잃고 앞쪽으로 넘어졌다.

스피커는 여전히 끌어안고 있었다.

그런데 스피커로 바닥을 찍을때 스피커의 밑둥은 깨져있었고

나를 빤히 쳐다보던 여자아이의 손이 내 시야에 가득찼다. 바로 옆이었다.


라오스 재래시장에서 우리돈 500원 주고 산 싸구려 쪼리를 원망할 틈도 없었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생각해야했다.

이 시골에서 만약 그런 끔찍한 일이 생겼다면

엠뷸란스를 부르는데 한 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다.

왕위왕에 병원이 있는지도 모른다.

비엔티엔까지는 3시간이 넘게 걸린다.

스피커바닥이 깨질정도였다면 손가락 하나 잘려나가는 건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다행히 꼬맹이는 조금 놀라보일 뿐 울진 않았다.

난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 엉거주춤한 자세로 몇 번을 숨을 고르고 있었는지 모른다.

내 가슴이 진정되고 나서야 놀라지 않았냐고 물으며 그 아이를 안고 등을 쓸어내렸다.

그렇게라도해서 발생치 않은 사고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표정을 몇번이고 확인한 후에야

떨어져나간 스피커 파편을 주어담을 수 있었다.